동성애든 이성애든 '사람 사이의 관계' 아닌가 씨네21 2001/02/14

동성애든 이성애든 '사람 사이의 관계' 아닌가 
씨네21  2001/02/14
   
아주 극소수의 관심있는 독자들은 이 지면을 거꾸로 읽더군요. 제가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라고 쓰면 좀 지루한 작품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막 비판하면 분명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 글이 어줍잖게 어렵거나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수용자들의 처세술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짧은 지면에 많은 얘기를 하고자 하는 강박증이 있으며, `비평 권력'이라는 글자만 봐도 화들짝 놀라고, 글쓰기에 대한 한계 또한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지 점프를 하다>(김대승 연출)에 대한 언급 역시 참 난처합니다. 여하튼 이 영화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습니다. 감독도 감독이지만 시나리오 작가 고은님씨의 역할이 참 컸겠다는 생각도 들고, 순진한 대학생과 고교 교사라는 17년의 시간차를 이야기 흐름에 맞춰서 절절하게 풀어낸 이병헌씨의 연기 또한 놀라웠습니다. 1983년 여름, 82학번들인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는 한 우산 밑에서 눈이 번쩍합니다. 따뜻한 웃음을 주지만 약간은 느슨한 플롯인 전반부는 인우가 하염없이 은주를 기다리는 것으로 마감됩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러브 스토리입니다.

이제 처자를 거느린 국어 교사가 된 인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는 첫 시간에 `징글징글한 인연'에 대해 얘기하고, 학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신뢰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우가 현빈(여현수)이라는 남학생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빈은 예쁜 여자 친구까지 있는 `일반'(이성애자)이었고, 인우 역시 `이반'(동성애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호모, 에이즈, 동성연(애)자, 파렴치한 선생, 동정하고 싶지 않는 학생이라는 괄호 속에 묶어버립니다. 현빈은 인우에게 저항했으며, 인우는 아내의 멸시를 받으며 학교마저 떠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둘은 아무런 약속없이도 만났고, 뉴질랜드로 번지 점프를 하러 떠납니다.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모처럼 만난 짜임새 좋은 영화, 무엇보다도 세부 묘사와 동기 연결에 뛰어난 그 섬세한 연출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영화들인 <시월애>, <동감>, <은행나무 침대>의 맥락에 속한 영화지만, 그 배후에는 <사랑과 영혼>도 버티고 있더군요. 또 동성애에 대한 잔인한 사회적 맥락을 드러내서 과외의 반성적 효과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태희와 (그 후신인 현빈과) 인우의 `그토록 징글징글한 사랑'에 대한 감동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토록 집요하고 순수한 사랑의 기원과 문맥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사회적 문맥을 놓치거나 적당히 차용하는데 그치는 한국 영화의 현실로부터 이 영화 역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감동 대신에 저는, 인우가 문제 학생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할 때 오히려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그 속에는 `사람끼리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평론가, 계간 <독립영화> 편집위원 이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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