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이 엇갈리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감독 씨네21

"내가 너무 건방을 떨었나”
 
찬반이 엇갈리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감독 
 
  
 “컬트가 되어 6, 7번 봤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리적으로 남자들이 부딪히는 데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태흥의 이태원 사장이 영화 보시곤 “너무 어려워서 안 되겠다”고 하시더라. 아무래도 너무 건방을 떨었던 것 같다.”
개봉 전 “1000명이 보면 1000명 다 다르게 보는 영화였으면 한다”는 김대승(35) 감독의 말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언처럼 맞아들어갔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평단의 엇갈린 평뿐 아니라, 일반관객 사이에서도 싫고 좋음이 분명하게 갈렸다. 어떤 이들은 ‘의도된 동성애 마케팅’이라는 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고, 젊은 여성관객은 이상하다 싶을 만큼 영화 속 사랑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개봉 첫주 만만치 않은 외화들 때문인지 기대에 못 미쳤던 관객 수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날이 갈수록 떨어지기는커녕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른다섯살의 늦깎이 데뷔감독은 개봉 뒤 보름이 넘은 상태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한 눈치였다. <하얀전쟁>부터 <노는계집-창>까지 10여년의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거친 김대승 감독은, 손마디 굵고 거친 모습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인터뷰 내내 서당에서 잘 배운 도령마냥 조용하고 수줍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끔 머뭇거리는 듯 솔직한 그의 모습 위로 83년의 서인우가 조용히 오버랩되기도 했다.


개봉 전과 지금 심경, 많이 다를 것 같다.

간판 내리고 비디오 출시될 때면 모를까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정신없다. 다른 점이라면 개봉 전에는 깊이 있는 척, 짐짓 잡았던 무게를 이제는 벗었다는 거다. 사실 본전이 다 드러난 거지. 개봉 전에야 나 혼자 고생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니까, 기죽지 마라, 이 영화 만만한 영화 아니다, 그렇게 스탭들 다독이며 뻥도 많이 쳤던 것 같다. 개봉 뒤에 게시판에 올라오는 영화평을 보며 힘을 많이 얻는다. 하지만 신랄한 비판의 글들을 보면 그나마 있던 자신감마저 쏙 들어간다. 다른 신인감독들도 다 그런 건지, 평을 듣고 의견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어려운 게 영화 만드는 거 같다.

세대, 성별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이나 느낌에 심한 편차를 보이더라.

이 시나리오의 장점이기도 하고 함정이기도 하다. 컬트가 되어 6, 7번 봤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리적으로 남자들이 부딪히는 데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태흥의 이태원 사장도 영화 보시곤 “너무 어려워서 안 되겠다”고 하시더라. 아무래도 너무 건방을 떨었던 것 같다. 서울도 시내극장과 날개(주변부), 지방극장 등의 반응이 많이 다르다. 모두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부드럽게 풀지 못한 건 내 한계였던 것 같다.

얼마 전 <씨네21>에 영화평론가 박평식씨가 요즘 멜로영화들에 대한 평을 썼는데, 읽어봤는지? 요약하자면 더 큰 야심을 가져달라는 주문일 텐데 이런 평에 대해 나름의 반론이 있을 것 같다.

스탭들이 그나마 우리(<번지…>)를 제일 조금 씹었다고 기뻐했는데, 나는 다른 영화 언급하느라 지면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냐고 했다. (웃음) 솔직히 평론가들의 글에 일일이 ‘이건 이런 건데요’라는 답을 달아서, 미처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의 평가에 영향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런 건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대답하자면, 먼저 현실성이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를 시작하면서 일상을 잘 담아내보자 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다. 그저 드라마에 충실하고자 했을 뿐이다. 또 젊은 감독들이 더 야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는데, 그냥 내 능력을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하고 싶지 않았다. 큰 이야기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지 관객도 납득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한때 <장미빛 인생>을 보면서 “영화는 좋은데 젊은사람 같은 치기나 패기가 없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후에 다시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영화를 못 봐도 한참은 못 보는 놈이구나” 했다. 그 영화 곳곳에 감독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숨어 있는데, 단지 실험성, 치기가 안 보인다고 패기없는 영화로 속단한 것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나름대로 부담이 많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제작자도, 작가도 입을 모아 “이건 사랑이야기야”라고 말하는데, 결국 눈에 보이는 건 남자들이고 동성애 영화로 보일 게 자명했다. 촬영 전 내내 고민이 ‘어떻게 하면 역하게 보이지 않을까’였다. 매일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가 ‘아, 이거 조명도 어둡게 가고 음악도 낮게 깔고 아예 내놓고 퀴어영화로 찍어? 그러는 편이 훨씬 좋은 평이 나오지 않겠어’ 하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약간 미쳤던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른 ‘에잇, 미친 놈!’ 하고 제정신 차린 거다. 난 그럴 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걸 안 거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탄탄한 드라마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둘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체육대회에서 어깨동무하고, 앞서 그런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나중 뉴질랜드 가서 하는 행동들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현빈과 태희 사이엔 외양의 유사함이 없다. 닮지 않은 얼굴은 이후 감정이입을 막을 수도 있을 거란 걱정은 안 했나.

전혀 안 했다. 처음부터 미소년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예쁜 남학생 데려다놓고 찍었으면 오히려 관객에게 인우의 갈등을 좀더 동성애적으로 이해시켰을는지는 몰라도 그런 건 애초 방향과 다르다. 얼굴도 다르고 성도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랑한다는 게 중요했다. 오히려 좀더 ‘머슴아’ 같은 아이를 찾았다.

후반에 갑자기 현빈이 전생을 기억하면서 이야기의 주체로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이는 그간 아슬아슬하게 잘 가져왔던 이 영화의 미스터리와 판타지를 깨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지만 그때 보이는 과거 장면은 현빈의 시점이자 곧 태희의 시점이다. 태희 입장에서도 인우와의 인연이 우연이 아니었고, 몇겁 거듭된 인연의 고리 중 하나였음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다만 너무 급박하게 풀려서 호흡에 문제가 있었던 건 인정한다.

인우와 현빈을 왜 굳이 뉴질랜드로 보냈나.

두 사람을 자유로운 공간으로, 확 트인 세상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곳에서, 인우와 태희가 서투르게 사랑을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하고 싶었다. 여행사 앞에서 어색하게 기다리고, 말도 안 하고 걸어가다 어깨를 두르고,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게 되고, 어깨에 기대어 잘 수 있게 되고, 결국 함께 떨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성애자는 다 죽으라는 얘기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항의를 담은 관객 평을 본 적 있다. 그 관객에게는 직접 이메일을 써서 설명을 했는데 그들이 번지점프를 하는 건 끝이 아니다. 자살했다고 명시한 적은 없다.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인연을 이어나갈 것이다. 또한 그들이 떨어지는 장면은 앞부분에 산에 올라가 태희가 했던 대사와 맞물려 있다. “떨어져도 끝이 아닐 거 같아”라는 태희의 말은 마지막 번지점프 장면이 아니라면 유치찬란한 대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영혼이 통하는 사랑, 윤회하는 사랑 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사랑은 80년대 인우와 태희의 모습에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가 내 진심에서 찍은 거냐는 이야기인가? 모두가 내 진심이다. 그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하나의 흐름에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찍었다. 저럴 땐 어깨에 손을 얹고 싶을 거야 하면 그렇게 했고, 저럴 땐 눈물이 날 거야 하면 그렇게 했다. 진심으로 영원한 사랑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고, 어서 빨리 그런 사랑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 (웃음)

<번지…>의 감정을 끌어낼 만한 사랑경험이 있나.

첫사랑. 정말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민 가기 한달 전부터인가? 둘이 만나면 얼굴만 봐도 엉엉 울었다. 떠나기 일주일 전 처음 여관을 찾았는데, 참 얼마나 서툴렀는지. 여관 불빛만 봐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정말 아픈 생이별이었다. 그 아릿한 기억이 영화를 찍는 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촬영하면서 이은주에게도 이런 이야기 많이 해줬다.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하더라.

원안이 시나리오를 쓴 고은님 작가로부터 나온 걸로 안다. 시작부터 끝까지 간섭 아닌 간섭이 있었겠다.

간섭이라고 하긴 뭐하고, 시나리오 작업 때 의견조율 시간이 좀 걸렸고 촬영 때는 뭐 촬영장에 와서 작가가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틈이 없었고, 대충 편집 끝내고 또 한번의 격렬한 토론을 했다. 이후엔 엔딩 내레이션 문제로 한번 더. 하지만 이 정도는 꼭 필요하고 사소한 마찰이었다. 대단한 순발력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으로 10년 정도 있었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

<하얀전쟁> 연출부 생활을 마치고 당시 임권택 감독님이 전쟁영화 경험이 있는 연출부를 구한다고 해서 불려갔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감독님을 처음 봤을 때 “너 한 3년은 할 거냐” 물으시더라. 꾸준히 있을 놈, 작품에 애정이 있는 놈을 원하셨던 것 같다. 오기로 “5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랬다. 책상 앞에 ‘임권택’이라고 써서 붙여놓았다. 그 이름만 봐도 정신이 바짝 들었고, 야단맞는 악몽도 많이 꿨다. <하얀전쟁> 할 때 당시 조감독이었던 심승보 감독이 “이 영화 끝내면 딴 작품은 발로 할 것”이라고 했는데 임 감독님 따라 <태백산맥> 찍고나니 정말 딴 작품은 발로 해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혹독한 수련을 받은 셈이다. 군기를 잡았다기보다, 임 감독님 같은 거장 밑에서 휼륭한 영화 찍으면서 연출부 하나 제대로 못해내다니, 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나 자책감이 원동력이자 채찍이었던 것 같다.

입봉이 늦었다. 입봉이 늦었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였다고 본다. 데뷔하고 보니까 그런 생각은 더 든다. 사실 감독 하나만 믿고 20억원 넘게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별 준비없이 얼치기로 만들어서 그 파생되는 손해를 어떻게 책임지나. 외부자본이 대부분인데 부실하게 만든 영화들이 하나둘 망하다보면 한국영화 투자에 대한 불신만 쌓여갈 것 같다. 사실 <창> 조감독 끝내고 나서 단편영화 만든다고 자투리 필름을 얻으러 다니는데 “니가 지금 무슨 단편이냐, 데뷔해야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창> 찍으면서 비로소 단순 ‘막노동 연출부’가 아니라, 신과 신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혹시 다음 작품도 멜로를 염두에 두고 있나.

아무래도 멜로는 힘들 것 같다. <번지…>처럼 이렇게 말많은 영화로 시끌벅적해진 상태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 같은 멜로를 하게 될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멜로를 좋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담아내고 싶다.

글 남동철 기자namdong@hani.co.krㆍ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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