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서 첫사랑의 그녀가 느껴진다 -1월25일 경향신문 < 경향신문 > 남자에게서 첫사랑의 그녀가 느껴진다 ▲‘번지점프를 하다’ ‘사랑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이별과 만남을 거듭하지만 사랑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그 사람뿐이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그 사람만 찾아다닐 것이다. 사랑은 알아볼 수 있는 거니까…’ 다음달 2일 개봉되는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같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대학생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는 1983년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2000년. 태희와 이별한 인우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성실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인우는 태희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한다. 새끼손가락을 펴는 버릇도, 숟가락의 ‘숟’ 받침이 왜 ‘ㄷ’이냐고 묻는 것도 그렇고…. 분명 그는 태희가 맞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이다. 그것도 철없는 17살짜리 남학생 현빈(여현수)이다. 이런 것이 대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비현실적이고 ‘영화같은 일’을 소재로 다룬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교사 인우가 학생 현빈에게서 사랑을 떠올리는 구조 탓에 동성애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동성애는 단지 ‘사랑’을 다루는 장치일 뿐 주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몇 번의 생을 반복해도 서로 알아보고 사랑을 이어가는 ‘소울메이트’(soulmate)와 인생의 윤회라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나 남자 맞지?’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는 인우, 그리고 사랑의 기억을 점차 떠올리게 되는 현빈의 모습은 씨줄과 날줄의 교차처럼 교묘하게 배치돼 있다. 깔끔한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는 물론 곳곳에 복선을 깔아놓아 종반으로 치닫게 되면서 하나하나 꺼풀을 벗는 미스터리의 맛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사랑에 고뇌하는 이병헌의 연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시리게 만든다. 충무로의 중심으로 다가선 배우 이병헌의 무한한 가능성을 읽게 해준다. 신인 김대승 감독은 현빈의 여자친구에게 질투를 느끼는 인우의 모습 등 탁월한 심리묘사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1983년과 2000년을 왔다갔다하며 보여주는 화면의 전환은 다분히 ‘신인’답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장면 전환은 호흡을 놓쳐버렸고, 따라서 매끄럽지 못한 전개도 곳곳에서 보인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겠다’. 어찌보면 신파조인 데다가 유치한 말이다. 요즘같은 세상엔 이런 사랑은 바보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진심으로 믿는 연인들에게는, 비슷비슷한 멜로물이 지겨운 관객들에겐 개운함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번지점프할 때 몸의 구석구석이 곤두서는 것처럼,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솟구치는 것. 그런 것이 사랑이라면 말이다. /박미정기자 broad1@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1년 01월 25일 16:47:08   Absolute number: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