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담백한 연기로 진짜 '전성기' - 1월25일 조선일보 이병헌, 담백한 연기로 진짜 '전성기' 그러고보니 이병헌이 새로 영화관에 걸리는 게 계속 명절 무렵이다. 지난 추석에는 ‘공동 경비구역JSA’의 한국군 이병장 역으로 관객 앞에 나타나더니, 이번엔 설 대목을 살짝 비켜 ‘번지 점프를 하다’(2월3일 개봉)로 돌아왔다. “정말, 저번 개봉 전에도 아버지 묘소에 성묘 다녀왔는데, 이번에도 그렇군요. 아버지가 지켜봐주실거란 생각이 드네요.” 91년 KBS탤런트로 연기 입문했으니 경력 10년이다. 초기엔 반항적이고 터프한 이미지를 등록상표처럼 내걸었던 그지만, 예전의 나르시시즘에서 확실히 벗어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매끈한 외모가 이젠 거추장스럽지 않고, 촌스런 시골 청년이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첫 조짐을 드러낸 게 98년 ‘내 마음의 풍금’이었다면, 설날 TV특집극 ‘마을’에서 아버지 한번 불러보고 싶은 순박한 고아 청년역도 그랬다. 이번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는 그는 스타라는 자의식의 번들거림이 씻겨나간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을 드러내지 못해 수줍어하는 청년―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다 갑자기 충격적인 발견을 한 30대 후반의 고교 교사―. 1983년과 2001년이란 18년 세월의 계곡을 건너 뛰는 서인우 역을 맡은 이 영화에서 그는 이제 순박하고 순수한, 그리고 일상의 때가 적당히 묻은 보통 청년을 여유있게 연기한다. 자연스런 리듬이 웃음을 자아내고, 달콤함 속에서 순간적인 쓸쓸함까지도 담아낸다. “제일 힘들었던 것이 선을 정하는 거였습니다. 상대역과 부딪히면서 오버하는 부분은 깎여나가고 부서져서 적정선에 맞춰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영화는 거의 제 리드로 이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선을 넘고 못 미치는 것을 일일이 제가 챙겨야했거든요. 다시 찍기도 여러번 했습니다.” 결말은 개봉 때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대본을 받고 저도 참 황당했어요. 거의 다 읽을 때까지도 상대방 정체를 오해하고 있었으니까요.” 영화는 ‘기쁜 우리 젊은 날’식의 청춘 멜러로 시작, 학원 드라마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를 거쳐 ‘은행 나무 침대’로 끝난다. 끼긱 거리며 롤러코스터를 올라가던 영화는 가속도 붙어 떨어지면서, 등장 인물과 관객 모두에게 당황스런 급전직하다. 그런 판타스틱한 상황을 믿는가. “첫 눈에, 이 사람이다, 하는 정황에 대한 공감은 있지요. 상상으로, 그런 걸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잖아요.” 자기가 여자 친구 사귀었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단다.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이게 내 짝이구나, 만나자마자 그런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짚신, 나막신, 남들이 다 신고 가버려서 지금은 하나도 없다고 재빨리 눙친다. 변신에 무슨 계기가 있었을까. “아마 세월 탓 아닐까요. 제가 만나 사람들, 겪은 일들, 부딪힌 사연들, 뭐 그런 게 다 모여서 지금의 저를 만든 거지요.” 이제 보니 자기가 잘생긴 과가 아니라 촌스럽고 담백한 게 잘 먹히는 과란 걸 알게 됐다고 말 할 정도다. 다음 영화는 아직 미정. SBS와의 계약이 남아, 텔레비전 드라마를 찍은 뒤 영화로 가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박선이기자 sunnyp@chosun.com) < 조선일보 >   01/25(목) 17:27   Absolute number: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