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 매일경제신문 2001/01/31

<매일경제>
[새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매일경제신문 > 문화      
2001/01/31 10:54  

 
 
<윤자경> 과거. 비오는 어느날 한 남자가 펴든 우산속으로 한 여자가 뛰 어든다.
연애의 시작이다.

향수어린 몇몇 과정을 거쳐 두 사람은 애인이 되었다. 군대에 가는 남자는 입영열차를 기다리며 당연히 여자가 와 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현재. 선생님이 된 남자는 평범하고 건실하다.

과거 연애의 기억은 어느 곳에 도 없는 듯. 그리고 그의 눈에 듬직하고 건장한 한 남학생이 들어 온다.

잊은 듯하던 과거의 기억들. 그의 시선이 멈추는 곳에, 그 곳에 자꾸만 그 녀석이 있다.

3일 개봉하는 '번지점프를 하다'는 과거와 현재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 결한 영화다.

사실 이런 플롯은 가깝게는 우리영화 '은행나무 침대'를 비롯해 홍콩영화 '인지구'중국영화'진용'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연의 정서를 공유한 동양권에서 이러한 접근방식은 관객들에게 친근하 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과거와 현재의 인연이 맞닿는 지점에서 연인의 성(性)을 바꿔 놓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모험을 감행한다.

진지한 멜로영 화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애틋함이 전혀 모습을 달리한 대상에게 전 도될 수 있을 것인가. 제작전부터 '퓨전멜로'라는 묘한 커튼을 치고 영 화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 이 영화는 그래서 동성애 영화라는 오해를 어느만큼 감수해야 했다.

리스크(risk)가 높은 베팅(betting)에 서 '번지점프를 하다'는 성공을 거둔다.

남자 제자를 사랑하는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다.

김대승 감독은 데뷔작에서 비약이 되거나 반대로 진부해 질 수 있는 이 야기를 참신하고 말끔하게 풀어냈다.

전반부 과거의 연애담은 후반부 도 약이 심한 점프가 무난할 만큼 탄탄한 정서적 토대를 쌓는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다정한 이야기거리들은 소박하고 예쁜 그림을 그린다.

비오 는 날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인우의 우산속으로 뛰어든 태희. 홀연히 버 스를 타고 가버린 그녀에게 반한 인우는 비가 오던지 말던지 우산을 들 고 버스정류장을 서성인다.

인우는 태희가 같은 대학 조소과 학생임을 알고는 자신이 국문과 학생임을 망각하고 조소과 학생이 되어 산다.

과 거의 이야기들은 파노라마 사진을 넘기듯 간결하게 넘어간다.

현재의 시 점에 도달해서야 관객들은 그 간결함이 후반부를 전개하기 위한 생략장 치였음을 알게 된다.

과거의 연인을 잊은 듯이 살고 있던 인우에게 태희의 기억을 불러 일으 키는 건 제자 현빈의 핸드폰 벨소리. 쇼스타코비치의 '세컨드 왈츠'가 울리며 과거는 되살아나 끊겼던 이야기의 뒷부분을 이어간다.

태희와 현 빈이 같은 존재임을 암시하는 방법으로 전혀 복선이 될 것 같지 않은 평 범한 요소들을 활용한 재치가 돋보인다.

소수의 배우들이 스크린을 채우는 만큼 잘나온 영화의 공의 상당부분은 배우의 몫이다.

이병헌은 어벙하게 피식 웃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임을 깨달은 것 같다.

여관방 씬에서 애드립이 아닌가 여겨질정도의 자연스러운 연 기는 '공동경비구역JSA'이후 어필할 수 있는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그를 느끼게 한다.

이은주는 '오!수정'의 도도한 매력을 이어가고 있고 현수 역의 임현빈은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연기로 동성애 영화의 불안을 가라앉힌 일등공신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현재와 과거로 갈라 놓게 한 '그 사건'이 어쩔수 없이 진부하지만 옥의 티로 느껴지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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