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번지점프를 하다>-맥스무비1/31

<맥스무비>
리뷰 :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번지점프를 하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그것이 멜로이든 미스터리이든 어떤 외적인 형태로 결합시킨다 해도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감독의 말처럼 천명의 사람이 보면 천 가지 메시지를 가지는 영화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가슴 한 구석을 무척이나 아프고 저리게 만드는 영화이다. 굳이 장르를 붙인다면 이 영화는 멜로다.

하지만, 기존 멜로 영화와는 기본 구조에서부터 독특한 출발을 보인다. 그 안을 억지로 파보면 '영혼의 사랑'도 들어있고 '전생'과 '환생'의 개념도 들어있다. 기존의 이런 영화들 예를 들어 <은행나무 침대>나 <천녀유혼>등을 보면 환생하기 전의 모습과 동일하거나 혹은 환생하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데 반해 <번지점프를 하다>는 외적인 모습보다는 영혼의 모습을 중시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불교적인 색채와도 맥이 닿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회노애락을 다 포용하는 인생의 강물, 영화는 그 강물로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를 증거 하는 강물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우리는 아주 조그마한 두 영혼의 사랑을 이야기하기로 하자.

1983년 몹시도 비가 오던 어느 여름 날, 태희가 인우의 우산 속으로 들어오던 날, 태희는 인우의 우산만이 아니라 그의 심장까지 통째로 가져가 버렸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자신의 심장을 도난 당한 인우는 멍청하게 서서 떠나가는 그녀를 쳐다본다. 험한 소리를 퍼부으면서도 서로가 하나로 묶여 있음을 아는 젊은 연인들은 가슴을 설레며 사랑을 한다. 감독은 여름 날의 짧은 사랑을 아주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들의 젖은 눈과 행동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증폭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섬세한 연출은 극 전개의 중심적인 역할을 충분히 한다. 특히, 영화의 초반, 인우와 태희가 하룻밤을 지새우기 위해 들어간 여관에서 달뜬 사랑의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 구석에 처박 혀 졸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인우가 군입대를 하던 날,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달라던 태희는 오지 않는다. 혼자 앉아 있는 인우의 모습 뒤로 기차가 지나면 장면은 갑자기 2000년대로 바뀐다. 관객들은 별다른 영화적 장치 없이 갑자기 2000년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도 없음에 안타까워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감독의 의도로 보여진다. 장면이 바뀌면서 인우가 커다란 칠판을 가로지르며 긴 선을 그리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씬은 아마도 하나의 흐름과 이어짐의 의미를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이제까지 알려진 영화의 정보는 여기까지이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의도적으로 이후의 스토리라인을 숨겨 놓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동성애'라는 부분에 대한 부담감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의 스토리라인은 영화를 보고 나면 동성애의 혐의는 오히려 반감되는 것을 느낀다. 국어 선생이 된 인우가 하필이면 연정을 품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그가 동성애자라서가 아니라 태희의 영혼이 그에게 스며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흔적들은 영화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태희가 말하던 숟가락과 젓가락의 받침이 다른 이유나 새끼 손가락을 펴고서 물건을 집는 습관, 그리고 태희가 자신의 모습을 새겨넣은 라이터에서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인우의 방황이 시작되며 영화는 꿈에도 그리던 연인이 되돌아 왔음에도 품에 안을 수 없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으로 감정의 폭풍을 느끼게 만든다. 그는 아내와 아이까지 둔 정상적인 남자인데, 사회와 아내마저 외면하는 사랑에 끌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병헌의 젖은 눈은 연민과 사랑, 그리움으로 격양된 폭풍 같은 감정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미 물이 오를 만큼 오른 이병헌의 연기가 절정에 다다르는 것은 방황 씬에서 극에 달한다. 태희가 어디에 있어도 알아 볼 수 있는 인우는 괴로움에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간다.

 취한 인우는 아내를 겁탈함으로써 자신이 남자임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그의 고뇌를 모르는 아내는 자꾸만 그를 밀쳐낸다. 그는 그렇게 이제 어디에 적을 둘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멀리 가버리고 만다.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심장을 가진 이라는 설정을 그래서 더욱 절절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 들어간다.

결말 부분을 보면 <번지점프를 하다>가 미스터리의 혐의는 별로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남학생이 자신을 깨닫는 부분에 너무나 갑작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미스터리의 속임수를 주기 보다는 격양된 사랑을 깨닫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관객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을 주인공들이 깨닫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마치 가느다란 목을 가진 병을 손톱으로 긁으면서 기어나가는 불행한 영혼들은 이제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자 한다. 어찌 보면 이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현실의 벽에 대한 좌절로 보여질 수 있겠지만, 이런 설정은 절벽에서 뛰어 내리는 끝이 아니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역사를 증거 하는 포용의 강물에는 봄날 같은 평화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원형 나사의 아주 미세한 먼지에 불과한 찰나의 생이 다시 어떤 시절에 맞추어 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인우의 말처럼 지구 상 한 곳에 바늘을 꽂고 하늘에서 실 하나를 떨어뜨렸을 때 바늘 끝에 실이 꿰어 질 확률만큼 미세한 인연으로 만나겠지만, 서로의 영혼을 알아볼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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