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연인 내 영혼의 짝일까 묻고 싶었다 - 한겨레신문 2001년01월25일

<한겨레신문>

편집시각 2001년01월25일18시38분 KST

[영화] 내 곁의 연인 내 영혼의 짝일까 묻고 싶었다

 요즘 멜로 영화만 너무 많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냐고 힐난조로 물었다.
“이병헌씨를 캐스팅하고 처음 만난 날 `감독님 이걸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만들 겁니까, 아니면 <고스트 맘마>처럼 만들겁니까'하고 묻더라.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말랑말랑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욕심이 났다. 이번은 처음이니까 내 생각을 5% 정도 담고, 다음에는 20% 정도 넣고, 그러다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면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를 해야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런 과정으로 멜로를 택한 것이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34)은 정지영 감독의 <하얀전쟁>을 시작으로 임권택 감독 밑에서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등의 조감독을 하며 10여년을 보냈다. 오랜 도제 생활을 지낸 경력이 무색하지 않게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여 탄탄한 실력을 갖춘 신인 감독의 또 다른 등장이 반갑다.

<번지점프를…>는 멜로의 구도에 동성애적 함의를 깊이 개입시켰다. 인우와 현빈은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다 같은 남성이라는 점에서 타인의 눈에 명백한 동성애 관계로 비친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과거에 끊긴 인연과 기적적으로 마주하게 된 이성애일 뿐이다. 이걸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해낼 도리는 없는 탓에 이 관계는 사랑의 애절함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사랑에 성차는 하등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만, 동성애를 이성애의 이야기거리를 위한 소품으로 썼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법하다.

“동성애 코드로 보는 게 무리가 아니다. 동성애적 설정은 애초 시나리오보다 좀 늘렸다. 처음엔 독립된 이야기로 만들려다 멜로 영화 찍으면서 너무 어깨에 힘주는 것 같아 분해하고 순서를 흩어 쪼개놓았다. 이 설정은 정말 뜨겁게 사랑하지만 헤어지고 만나는 갈등의 조건일 뿐이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 내가 손잡고 있는 이가 내 영혼의 짝이 맞을까'라고 한번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난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그들을 절대로 혐오하지 않는다.”

요즘 대부분의 개봉작들이 감독 데뷔작이다. 프로듀서 기능이 강화된 기획성 작품이 주를 이루면서 `초짜 감독 선호'는 일종의 유행이 되버렸다. 감독 지망생에게는 기회의 폭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못만들면 첫 작품이 유작이 되고 만다. 김 감독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믿고 쉽게 일할 수 있는 어린 감독들을 선호하는 풍토는 영화의 질을 자꾸 떨어뜨리고 결국 관객에게 배신감을 반복해 안겨줄 뿐이다.”

그리고는 임권택 감독에게서 배운 `기본'을 이야기했다. “허허벌판 염전에서 <태백산맥>을 찍을 때, 감독님이 갑자기 김치를 갖다놓으라고 해서 연출부가 난감해했다. 토벌군이 덮치고 빨치산이 도망간 자리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엎지러진 김치 그릇이 놓여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갑자기 구할 데가 없어 군소리하던 연출부에게 임 감독님은 `영화라는 게 관객들과 만날 때까지 뭐가 최선인지 찾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게 <서편제>나 <춘향뎐>처럼 영화를 힘있게 끝까지 끌고 가는 원천이었다.”글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번지점프를 하다' 어떤 영화?
17년전 '그 여자'의 느낌이 남학생 제자안에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윤회를 거듭하며 영혼을 나누는 사랑'이란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를 꼼꼼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낸 멜로다.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일상과의 접목을 새로운 출구로 삼는 듯한 요즘 멜로의 유행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지만 이 영화가 확보해낸 사실감은 만만치 않다.

1983년 여름, 대학생 인우(이병헌)의 우산 속에 갑자기 뛰어든 태희(이은주)의 의도된 작전은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 그날부터 맹ㄹ 우산을 들고 버스정류장을 배회하며 태희를 찾던 인우는 같은 학교 조소과 작업실에서 그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시작된 사랑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인우가 입영열차를 타러가던 날 태희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17년이 흘러 인우는 다른 이와 가정을 꾸미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살아간다. 그런데 담임을 맡은 반에서 마주친 17살의 남학생 현빈(여현수)에게서 자꾸 태희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그 느낌에 집착하자 학생들은 그를 '동성애자'라고 손가락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빈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점차 느끼기 시작하는데...2월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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