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주연 이병헌씨 - 매일경제 2001/2/2

<매일경제>  
2001/2/2

`번지점프를 하다' 주연 이병헌씨

천상 그는 배우다.지난해 9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할 즈음
이병헌(31)은 많이 수척하고 강파른 모습이었다.그런 이미지가 싹 달
라졌다.한바탕 홍역같은 사랑을 앓고난 뒤 평온을 되찾은 이가 저럴
까 싶게.

김대승 감독의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3일 개봉·제작 눈엔터테
인먼트)에서 그는 지독한 로맨티시스트가 됐다.영원히 떠나간 옛사랑
이 문득 제자의 몸을 빌려 찾아오고,그 인연의 정체를 용케도 알아채
는 고등학교 교사 서인우 역이다.

목요일 점심때.“연속 일주일을 쉬어본 게 언젯적인지 모른다”며 엄
살피우는 그를 붙들어 앉혔다.설렁탕 한 그릇을 게눈감추듯 ‘해치우
는’ 모습너머로 영화속 인우의 익살이 휙 오버랩되고 지나간다.

“영화에서처럼 영혼과 교감하는 사랑을 해본 적은 없어요.하지만 가
슴뛰는 연애는 해봤죠.(웃음)모르긴 해도 운명적인 사랑이라면 다음
생에서도 서로를 알아볼 거라 믿어요.”

영화는 인연의 힘과 윤회를 소재로 한 러브스토리다.1983년 대학캠퍼
스에서 이루지 못한 인우와 태희(이은주)의 사랑은 17년 뒤 다시 인
연의 끈을 엮는다.제자인 현빈(여현수)을 통해 태희와의 기억이 복원
되는 판타지 요소 때문에 동성애 영화로 오해받기도 한다.올해로 데
뷔 10년.지난 91년 KBS ‘아스팔트 내고향’으로 연기를 시작했다.이
번은 그에게 7번째 영화다.‘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런 어웨이
’‘지상만가’ 등이 있었지만 그를 각인시키진 못했다.배우로서 뿌
릿발을 내린 건 ‘내마음의 풍금’(99년)에 와서였다.

“‘JSA’가 뜨고나니 은근히 이번 영화의 흥행성적을 걱정하는 분들
이 많더라구요.상대적으로 초라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서겠죠만.
근데 저는 그런 어리석은 계산은 안합니다.(영화는)평생할 작업인데,
번번이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잖아요?” 툭툭 우스갯소
리를 잘도 던지던 그가 진지해진다.“갈수록 두려운 건…연기에 대한
스스로의 부담과 관객의 평가예요.” 영화를 찍는 틈틈이 고3 때 담
임선생님을 찾아간 것도 그래서였다.눈빛이라도 읽고 오면 극중 캐릭
터(국어교사) 묘사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은 욕심이었다.

말꼬리 한번 흐리는 법이 없다.턱선에 강단이 넘치는 서른한살의 배
우.묻지도 않았는데,어느새 상대역 이은주 칭찬에 침이 마른다.“으
레 신인들은 시나리오가 정해놓은 연기틀에 갇혀있게 마련이거든요.
그 친구는 달라요.평소 수수한 스타일이 그런 자신감에서 나오겠다
싶을만큼 감정의 폭도 넓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슬쩍 속이야기를 꺼낸다.“오랫동안 탐내온 역
할이 하나 있긴 해요.교복입은 까까머리.‘친구’(3월 개봉)같은 시
나리오가 왜 내겐 안들어오나 몰라요.”

황수정기자 sjh@k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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